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5. 11:38
사진 / 반사경에 비춰진 전후재 비포장길. 하얀 것은 시작입니다. 나는 그 하얀 길을 걷습니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배움이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길은 걸으면서 배웁니다. 여행으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발적인 일입니다. 특히 옛길을 걸을 때면 인내와 겸손이 저절로 따라붙습니다. 옛길은 좁고 희미하며 한없이 빠져드는 아득함이 있습니다. 내 몸속을 걸을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이런 옛길의 모양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옛길은 안으로 파고드는 길입니다. 달아나는 길이 아니라 자연 속 사람과 집을 찾아 그 은밀한 공간으로 빠져드는 길입니다. 나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옛길을 걷습니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불편하고 힘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여행은 늘 자신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
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5. 11:31
사진 / 개암사 대웅보전(보물262호) 멀리 있을 때 비로소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언제나 제자리에 그것도 늘 곁에 있다. 그런데 나는 늘 그것을 무시해 왔다. 무시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항상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새로운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사는 것이다. 개는 주위에 움직이는 것이 없으면 꾸벅꾸벅 존다. 하지만 뭔가 주위에서 움직이는 것이 있으면 즉각 반응을 보인다. 그것이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 한 잎이라도.. 이것이 지금 나의 마음이다. 나는 변화하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인다. 변화가 없으면 내 마음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이다. 그 졸음 뒤에 더불어 꾸벅이는 내 사랑의 걸음들을 잊어 버리는 것이다. 기지개 한번에 언뜻 들어오는 저 멀리 있는 것들.. 어머니 무덤가 불어 오..
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5. 11:29
사진 / 초치고개에서 본 중골 달아나는 비를 따라 나선 걸음은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중골을 타고 있다. 차가운 기운이 일어나 안개를 만들고 대기는 그만큼 더 맑아진다. 그윽한 정적이 흐른다. 스치는 것들 모두 사색의 정신이 깃들어 살고 있다. 그들이 사색으로 들려주는 물소리, 바람소리들 나무들 사이로 밀려오는 사유들... 세상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진부한 것들... 그 산만하고 억지스런 내가 그들 곁에 조용하게 흩뿌려지고 있다. 바람 따라 걷는 나는 지금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길을 따라 가슴큰 소리로 기도를 하고 묵도을 한다. 가치 있는 마음으로 흐르는 나를 만들어 달라고.. 바람으로 일렁이는 빛은 영롱함을 달고 나는 그것을 그져 바라만 보고 있기에도 벅차다. 그져 내 감각이 늘 순수하기만을 빌고 또 빌 ..
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5. 11:27
사진 / 장성 축령산 삼나무, 편백나무 숲길 너무나도 그립고, 너무나도 서러울 때 숲을 찾을 일이다. 그런 날에 찾는 숲에서는 토해낸 서러움이 저절로 훌쩍 자라나 바람을 타고 멀리 사라진다. 그리고 그 서러움은 나무가 된다. 그렇게 인내하며 자라는 나무는 그 속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한칸 한칸 나무가 끌어 않은 삶들이 기록을 새기며 굵고 굵은 줄기를 만들고, 뿌리를 만들고 그리고 어느 누가 기대어도 좋을 품을 만든다. 그 품들 하나,둘 모여 너르고, 너른 숲을 만든다. 그런 숲은 고요를 만든다. 고요한 숲에 서면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감이 있다. 무서움의 일종인 고요는 들끓는 마음을 아우르고 뒤틀린 마음을 곧 세우고 상처난 것들을 어루만져 준다. 몸과 맘이 탈이나 너무나도 외롭고, 쓸쓸할 때 ..
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3. 11:30
사진 / 고현마을(높은벌) 걷는다는 것은 삶의 꾸준한 증거이다. 살아 있음의 증거인 걸음들이 쌓여 만드는 길 그래서 낯선 길의 불분명한 발자국은 호기심을 유발한다. 이 땅을 짚고 사는 삶들의 느낌을 채워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길은 이렇게 저렇게 삶들의 그리움을 부풀린다. 삶의 그리움들을 불려 들여 걷는 길은 그래서 생명력이 있다. 계절은 깊을대로 깊어져 겨울이 벌써 몸통을 키워가고 굵은 몸통에 생각이 깊어져 훌쩍 계곡을 만드는 날 나는 또 하나의 사유의 길을 가고 있다. 삶의 첫번째가 생계를 위한 것이라면 삶의 두번째는 길을 걷는 것이다. 이 땅의 풍경들을 헤아리며 고개마루에서 잠시 길을 생각한다. 길이 뚫리면 제일 먼저 문명이 들어온다. 하지만 그 문명은 잠시후 다른 한쪽 문명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3. 11:20
사진 / 내소사 대웅전 창살 문양 가을 햇살이 밀고 오는 사람들의 꼬리를 나는 쫓는다. 그 쫓는 꼬리들 사이 사이로 가슴 속 연필로 쓴 그리운 것들이 아련하다. 연필이란 것은 한번 쓰고 난 생을 지울 수 없다는 세상 두려움에서 나를 잠시 비켜 세우게 한다. 사람의 생을 지워 버리고 다시 고쳐 쓸 수 있다면 용서 받지 못할 일, 용서 하지 못할 일 서로에게 잘못 간 길을 지워 고쳐 걷게 해주는 일 그런 일을 위해서 연필은 필요한 것 이리라. 길과 나무와 사람들 사이로 뿜어내는 호흡들 풍경을 만든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떤 큰 것들이 구원해주는 것 보다 작고 하찮은 것들일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 이렇게 여유로운 길은 사람을 즐겁게 하고, 그립게 하고, 기쁘게 하고, 충만한 삶을 만든다. 하여 절로 가는 ..
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3. 11:18
사진 / 심포 풍경 풍선처럼 빠져 나가는 한줄기 그리움들... 길은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다에서도 길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 눈을 들어 바라보는 삶은 결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쉴사이 없이 밀고 당기는 삶처럼 일렁이는 바다는 격렬하다. 어떤 몸짓으로 살았을까...나를 지그시 감고 본다. 어딘가 말이다...끝이 있을 것 같은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그시 감고 뜨는 것 사이로 바다는 길을 만든다. 삶이 버겁고 힘들어서 떠나온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사람만이 아니라 더욱 더 다양한 삶들이 살아 숨 쉰다. 다양한 삶 만큼이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곳, 그 곳이 바로 포구다. 삶이 막막하여 앞이 보이지 않아 두려울 때 살아야 할 시간이 더 많음에도 살아온 시간에 주저앉고 싶을 때 끈적이는 바..
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3. 11:15
사진 / 오대산 소나무 숲 숲을 들어 간다는 말 보다 숲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말이 정확한 말일 것이다. 이말의 참뜻은 사람은 자연을 찾아 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인공의 삶에서 자연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공의 길을 버리고 들어선 오대산 그곳에는 물과 빛과 나무와 풀이 어우러진 시간의 동굴이 있다. 숲은 문명과 상처의 삶에서 그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는 잃어버린 낙원이다. 그러기에 숲은 문명의 삶이 아니라 야생의 삶이다. 우리는 야생을 거칠게 보는 경향이 깊지만 야생의 삶이란 거친 삶이 아니라 온전한 삶이다. 숲으로 돌아가면 사람은 순수해지고 경건해지기 때문이다. 숲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은 벌거숭이로 존재한다. 숲은 사람을 자연 즉 스스로 되어 지도록 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