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 - 초치, 중치, 말치고개

사진 / 초치고개에서 본 중골 

달아나는 비를 따라 나선 걸음은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중골을 타고 있다. 차가운 기운이 일어나 안개를 만들고 대기는 그만큼 더 맑아진다. 그윽한 정적이 흐른다. 스치는 것들 모두 사색의 정신이 깃들어 살고 있다. 그들이 사색으로 들려주는 물소리, 바람소리들 나무들 사이로 밀려오는 사유들... 세상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진부한 것들... 그 산만하고 억지스런 내가 그들 곁에 조용하게 흩뿌려지고 있다. 바람 따라 걷는 나는 지금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길을 따라 가슴큰 소리로 기도를 하고 묵도을 한다. 가치 있는 마음으로 흐르는 나를 만들어 달라고.. 바람으로 일렁이는 빛은 영롱함을 달고 나는 그것을 그져 바라만 보고 있기에도 벅차다. 그져 내 감각이 늘 순수하기만을 빌고 또 빌 뿐이다. 지금 스쳐가는 풍경처럼 세상을 그대로 놓고 보자. 잔잔한 계곡물에 나를 비추니 한치도 안된 깊이에 내가 있다. 한치도 안된 깊이에 나를 읽고 서 있는 물에게 어떻게 깊이를 물을 수 있겠는가? 내가 늘 나인적도 드문데 나는 남들 까지 다스리려든다. 지금 자연의 소리는 진지하고 기운차게 나를 다스리고 있다. 다스려 지는 느낌이 좋아 나는 원주 땅 신림면 초치를 넘고 영월 땅 수주면 뱀골을 거쳐 지장사를 거쳐 중치를 넘고 당골을 지나 안당골을 지나 은혜사를 지나 말치를 넘어 어느덧 횡성 땅 강림면 부곡리에 닿아 달아나는 비를 잡는다. 잡는다고 잡혀 있을 비가 아니지만.. 

*이 길의 들머리는 원주시 신림면 황둔중학교 입구이며  날머리는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치악산 부곡탐방지원센터 입구)이다. 이 길의 거리는 15km에 5시간 가량 소요된다. 이 길은 아주 평범한 골길이며, 때론 길이 끓어졌다 살아나기도 하고, 큰길이 나타나다 자취를 감추기도 하고, 하지만 인생사 초년, 중년, 말년을 추억하고, 다스리고, 그리며 걷기 좋은 길이다. 초치(初峙)고개는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중골에서 영월군 수주면 두산리의 뱀골로 넘어가는 고개이고 초치에서 영월군 두산리를 지나 횡성군 강림리(講林里)로 가면 중치(中峙), 말치(末峙)고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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