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 - 전후재

사진 / 반사경에 비춰진 전후재 비포장길. 

하얀 것은 시작입니다. 나는 그 하얀 길을 걷습니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배움이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길은 걸으면서 배웁니다. 여행으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발적인 일입니다. 특히 옛길을 걸을 때면 인내와 겸손이 저절로 따라붙습니다. 옛길은 좁고 희미하며 한없이 빠져드는 아득함이 있습니다. 내 몸속을 걸을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이런 옛길의 모양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옛길은 안으로 파고드는 길입니다. 달아나는 길이 아니라 자연 속 사람과 집을 찾아 그 은밀한 공간으로 빠져드는 길입니다. 나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옛길을 걷습니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불편하고 힘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여행은 늘 자신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런 기억의 너와 내가 만나서 아름답게 흐르는 물 같은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여 오늘도 나는 옛길을 걷습니다. 눌어붙어 앉은 인간의 흔적들을 헤집습니다. 울며불며, 밀고 당기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웃는가 싶으면 한숨 쉬는 인생 같은 옛길, 옛길 같은 인생들이 세월을 붙잡습니다. 세월에 지친 내 인생살이 슬프다가도 옛길에 품어진 인생들 사연 하나 꺼내 들면 나는 하찮은 슬픔에 젖어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울퉁불퉁 옛길을 그래서 나는 즐겨 걷습니다. 옛길은 어떤 마음으로 가더라도 넉넉하게 받아주는 가슴 깊은 사람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뭐니 해도 옛길의 으뜸 덕목은 사람을 주눅이 들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즈음 단순 편리와 이득을 위해서 닦아놓은 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임을 확인 시켜주는 비장함이 있습니다. 눈에 밟혀오는 이 땅의 옛길을 생각하면 내 속 좁음에 화가 날 만큼 넓은 가슴 그대를 생각게 합니다. 사라져 가는 옛길의 향수를 달래려면 또 꿈길에 들어야 합니다. 꿈길에 만나는 옛길에 말할 것입니다. 나를 키워준 것은 탄탄대로 그 환한 길이 아니고 꼬불꼬불 이리저리 휘고 도는 어렴풋한 옛길이었다고… 하지만 옛길이여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당신을 잡고 살지 못합니다. 그러니 옛길이여 부디 살아남기를… 

*강릉시 연곡면 삼산4리 회골에서 연곡면 삼산3리 가마소(부연동)로 넘어가는 길이 전후재이다. 이 길은 가마소에서 양양군 서면 어성전리까지 이어지는데 명색이 국도 59호선이다. 전후재 북쪽 아래에 있는 마을의 옛 이름이 가마소인데 현재는 부연동이라고 부른다. 가마소라는 좋은 이름을 두고 부연동으로 불리게 된 연유는 일본 강점기에 한글 표기인 가마소를 한자 표기인 부연동으로 바꾸면서이다. 가마소의 이름은 말죽을 끓이는 가마솥을 닮은 깊은 소에서 유래 되었다 하며, 전후재는 고개의 앞뒤 모습이 똑같은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한다. 현재 가마소는 2002년 태풍 루사의 피해를 입어 소가 메워져 볼 수가 없다. 이 국도 59호선 거리는 23km가량이며 7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다. 2017년 현재는 길이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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