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3. 11:15
사진 / 오대산 소나무 숲 숲을 들어 간다는 말 보다 숲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말이 정확한 말일 것이다. 이말의 참뜻은 사람은 자연을 찾아 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인공의 삶에서 자연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공의 길을 버리고 들어선 오대산 그곳에는 물과 빛과 나무와 풀이 어우러진 시간의 동굴이 있다. 숲은 문명과 상처의 삶에서 그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는 잃어버린 낙원이다. 그러기에 숲은 문명의 삶이 아니라 야생의 삶이다. 우리는 야생을 거칠게 보는 경향이 깊지만 야생의 삶이란 거친 삶이 아니라 온전한 삶이다. 숲으로 돌아가면 사람은 순수해지고 경건해지기 때문이다. 숲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은 벌거숭이로 존재한다. 숲은 사람을 자연 즉 스스로 되어 지도록 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3. 11:13
사진 / 화암사 우화루 움츠린 내몸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바람에 씻기듯 털어내며 모처럼 많은 걸음을 걷는다. 길은 잘 다듬어져 있고 제법 호젓한 느낌이다. 걸음이 가볍다. 이런 길에서는 말이란 공허한 것이다. 그냥 침묵할 뿐이다. 이 침묵을 깨는 소리 하나 들려온다. 이름 모를 새 한마리다, 하지만 그 지저귐은 하나의 감동이다. 이 낯모른 새는 상상과 환영으로 흐르는 사색 속으로 나를 끌어 간다. 하여 지금 내가 보는 사물들과 내 기분은 하나가 된다. 눈은 맑아지고 하찮다고 여기던 것들이 소중함으로 다가선다. 그러기에 이 땅의 진정한 시인은 이들 낯모른 새이다. 그런 걸음을 식히는 바람 몇자락이 스치고 간다. 그리고 길은 골짜기로 파고든다. 하늘을 질겅거리며 곡절을 삭히며 사는 지친 발걸음들을 위해 만들..
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1. 13:47
사진 / 죽령 산신당 사람이 지니고 사는 길은 사람의 언어이다. 언어는 소통이다. 길도 소통이다. 소통은 나눔의 길이고 나눔은 누구를 부르는 일이다. 그래서 길은 사람을 부른다. 나는 오늘 나를 부르는 죽령을 향해 간다. 파란 가을 하늘에서 어머니 쓴소리가 따갑도록 내리쬐는 풍경 좋은 날 발길은 소백산역(옛희방사역) 아래 죽령 옛길 들머리 수철리 입구에 내려 서 있다. 옛기록에 의하면 신라 아달라왕 5년(158년)에 죽죽(竹竹) 이라는 사람이 고갯길을 처음 닦아다고 한다. 하여 대나무 한그루 없는 이 길이 죽령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죽령은 한때는 고구려 땅이었다가 신라 땅이 되었고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고향으로 후백제가 탐을 내던 곳이다. 풍기 지방을 필두로 소백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줄곧 죽령..
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1. 13:45
사진 / 고갯마루에서 본 조양강 후두둑 뿌려지는 찬 기운이 차창을 두드린다. 나는 팔짱을 끼고 널부러지고 차는 돌고 돌아 간다. 덜커덩...눈을 뜨니 정선터미널이다. 터미널에 내려 오른쪽, 오른쪽으로 난 도로를 오르면 마른 고추대들 서걱이는 뱅뱅이재 들머리이다. 절로 아라리 한구절이 주절주절 튀어 나온다. "고추밭 풀 뽑으라면 풀 하나 못 뽑는 조 잡년 속곳 가랑이 벌리라면 도둑놈 칼 빼듯 하는구나" 길은 한가락 읊조리게 한다. 50여분 포장된 길은 끝나고 비포장 길이 시작된다. 비포장 길을 걷다 보면 모든게 느리게 다가선다. 그 느림은 빠른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불러온다. 어설픈 걸음 만큼이나 어설픈 내 삶이 오고 그 삶들의 배경들이 늘어선 나무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시릿한 바람에 흔들려 온 ..
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1. 13:27
사진 / 선운산 길 흐드러진 석산꽃 사시사철 붉은 기운이 돌고 종환이 터지는 선운산 길을 석산꽃 봉오리 하품에 발맞추어 간다. 흐드러진 붉은 꽃들 사이로 고샅길 추억이 자라난다. 붉은 정신이 깃든 잎을 타고 그리운 것들 나를 붙잡아 세운다. 뜨거운 핏줄로 졸고 있는 나... 풍경소리에 깃들어 운다. 세월의 몸짓으로 만든 상처에 둥글고 단단한 옹이가 된 추억은 바람이 된다. 바람이 분다. 내 가슴에도 바람도 분다. 아직도 향기 그윽한 그리움의 바람이 분다. 추억들 하나 둘 떠올라가 무거운 것들 골라내... 길을 만든다. 길이 스치는 곳에 물과 물이 만나고 산과 산이 만나서 계곡을 이룬다. 늘 내 삶을 가지런히 흘려 보내주는 그리운 사람들 곳곳에 고요하다. 산을 넘는다. 추억이 끌고 가는 곳에 말간 내가 보..
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1. 13:25
사진 / 오월 신원사 풍경 길을 나선다. 불현듯 찾아온 오월의 기억을 찾아... 비릿한 흙냄새와 함께 나무들 가지마다 사색으로 늘어 선 연초록 잎새들 가슴으로 피어나 그해 5월을 물들였다. 시간의 범벅이 땀으로 흐르고 나뭇가지처럼 늘어 선 기쁨의 기억도 끝나고 허공만이 늘어 선 이제는 낯 설은 기억... 기억은 거기서 눕는다. 사람 사는 기억의 저편이 이곳이다. 다름 아닌 기억은 삶이기에...현실의 풍경이다. 이런 풍경을 더듬다 보면 기억은 늘 그리움을 끄집어 오고 그 그리움은 좋든, 싫든 언어와 연루되어 있다. 늘 자신을 챙기기 바쁜 세상살이 그리움의 언어는 더욱 궁색한 변명으로 흘러가고 만다. 세상길 만나는 가슴들에 늘은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아름다운 언어로 다가서도록 한번 쯤 넘겨보자. 시원한 바람이..
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1. 13:20
사진 / 도미부인이 태어났다는 미인도 밤을 갉아 먹는 내 정신의 잇빨이 너무나도 날카롭다. 왠일인지 이 밤을 갉아도 갉아도 내 정신의 잇빨은 닳지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나마져 갉아 먹고 있다. 노래 하나를 듣는다. 크라잉 넛의 '밤이 깊었네'란 노래이다. 어느날 여행길 심야버스에 실려 FM 라디오에서 들어 알게된 노래이다. 가사를 요약하면 밤이 깊었고 불빛이 방황하며 춤을추고 밤에 취해, 술에 취해 흔들리고 있는데 벌써 새벽이 오고 있지만 곁은 있어도 혼자, 혼자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항상 당신곁에 머물고 싶지만 밤에 취해, 술에 취해 떠나고만 싶다고 이슬픔을 알랑가 모르겄는 나의 발이여 너만은 내곁을 떠나지 말라고 하나 둘 피워오는 어린시절 동화같은 별을 보면서 오늘밤 술에 취한 마차 타고 지친..
여행이야기 남주네 2017. 11. 21. 12:46
사진 / 새벽 문수골 바람은 산천을 즐겁게 하고 햇볕은 초목을 살찌게 하는 봄날 나는 왼쪽의 핏빛 역사 지리산 질매재을 향해 걷는다. 세상은 잠들어 있고 안개만 내려 앉는 문수골 계곡을 터벅이듯... 내 여행길에서 유난히도 친근한 안개 안개 친구는 앞선 세상을 천천히 지우며 내게 소리없이 다가와 등을 다독거리며 시끄런 걸음으로 세상에 쫓겨 사는 나를 허리 붙들어 세우고 거친 호흡을 달래준다. 그는 또한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끝없는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어 비켜 세운다. 그런 그의 세상을 나란히 걷는다는 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여행이다. 안개는 세상의 높고 낮음에 마음을 두지 않고 똑 같은 질량과 무게로 사랑을 베푼다. 더불어 그는 누가 자신의 세상을 헤집고 지나쳤다고해서 불쾌해하지도 더럽혀지지도 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