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 - 죽령

사진 / 죽령 산신당 

사람이 지니고 사는 길은 사람의 언어이다. 언어는 소통이다. 길도 소통이다. 소통은 나눔의 길이고 나눔은 누구를 부르는 일이다. 그래서 길은 사람을 부른다. 나는 오늘 나를 부르는 죽령을 향해 간다. 파란 가을 하늘에서 어머니 쓴소리가 따갑도록 내리쬐는 풍경 좋은 날 발길은 소백산역(옛희방사역) 아래 죽령 옛길 들머리 수철리 입구에 내려 서 있다. 옛기록에 의하면 신라 아달라왕 5년(158년)에 죽죽(竹竹) 이라는 사람이 고갯길을 처음 닦아다고 한다. 하여 대나무 한그루 없는 이 길이 죽령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죽령은 한때는 고구려 땅이었다가 신라 땅이 되었고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고향으로 후백제가 탐을 내던 곳이다. 풍기 지방을 필두로 소백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줄곧 죽령으로 한양 길을 열어 왔었다.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있다면 산허리를 자르고 새로운 길을 냈고 산 아래로 굴을 뚫고 다닌다는 것 뿐이다. 작은 오솔길로 펼쳐지는 옛길 그대로의 풍광이 발길을 사로 잡고 계속하여 나타나는 사과밭을 가르고 가는 길은 가을 정취가 그만이다. 탐스럽게 붉은 사과 한알에 님소식을 새겨 넣다보니 발걸음은 어느새 수목이 터널을 이룬 산길로 들어서 있다. 옛사람들이 과거를, 미래를, 등에 지고 희망을 따라 걸으며 기다리는 그리움을 향해 가는 길을 따라 걷는다. 낯 모르는 미지의 사람과 낯익어 정들은 사람을 위해서 길은 걷는 사람을 통해 지금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고 있다. 사람을 이어주는 길은 이웃을 만들고 그 이웃들은 나를 만들어 준다. 그리하여 길은 따뜻함과 끈끈함과 웃음과 눈물을 만든다. 길은 마을과 마을, 그 마을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의 일상과 그 일상 속에 필요한 물건과 물건을 이어준다. 이 물질의 돌림 현상을 통해 길은 사람에게 진정성을 갖게 만든다. 그 진정성의 길은 다양한 삶 만큼이나 다양한 길을 만든다. 그 다양한 길을 걸으면 그래서 꿈이 있고 사색이 있어 길은 황량한 고독을 만들지만 자유가 있다. 길은 사람에게 생각과 의지와 느낌을 만나는 이웃에게 가는 언어이다. 이웃을 찾아가는 길은 내 삶의 우물을 파는 일이다. 침묵의 자연 속에서 그 우물을 조금씩 조금씩 파고 들어가 내 가슴 속의 사유들을 퍼 올리는 것이다. 길은 그래서 발이 걷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걷는 것이다. 그런 죽령길 들꽃들이 정겨운 모습으로 길손과 의기를 투합한다. 옛사람들이 숱한 사연을 안고 걸었을 이 길에 뚝 뚝 흘리는 눈비 섞인 생각들... 이런 저런 사연에 젖어 걷는 옛길 죽령이 점점 무르익어 간다. 죽령 옛길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을 붙잡을 만큼 빼어난 풍경은 없다. 죽령 옛길은 산길을 그져 산책하듯 걷는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게 사색으로 걷다보니 길은 가파르다 싶더니 고갯마루에 이른다. 이제 부터는 충북 단양 땅이다. 내리막 길인 단양쪽 죽령길이 시작된다. 산길을 따라 걷다 빠알간 사과가 유혹하는 마을 뒷길로 내려서면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2리 마을이 나오고 올라서면 국도 5호선을 만난다. 국도 5호선을 따라 걸으면 용부원 3리가 나오고 그곳에 죽령의 산신 다자구 할머니가 모셔져 있는 산신당 가는 길이 나온다. 마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1km 가량 올라가면 산신당이 나오는데 죽령사(竹嶺祠) 산신당에 모셔진 다자구 할머니 애기는 이렇다. 옛날 산적에게 두 아들을 잃은 한 노파가 있었다. 노파는 죽령의 산적을 잡는데 실패를 거듭하는 관군과 미리 짜고 산적굴에 들어갔다. '들자구야'는 기다리라는 신호였고 '다자구야'는 공격 신호였다. 산적에게는 이름이 '들자구'와 '다자구'인 두 아들을 찾는다고 둘러댄 터였다. 마침내 산적이 모두 술에 취해 잠 든 사이 노파의 '다자구야' 소리를 신호로 관군이 들이닥쳐 산적을 섬멸했다. 이에 나라에서는 죽어 산신령이 된 '다자구 할머니'를 기려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관통하여 버린 곳에 외로이 감추고 선 아련한 옛 애기를 주워들고 걸으니 싹둑 싹둑 잘려나간 소백산 허리들이 아스라히 멀어져 있다. 갑자기 찾아오는 요통 그래도 줄기차게 걸어야 하는 세상 길 그 검은 길에 세상사들이 신열을 불러오고 있다. 

*죽령길은 들머리 영주 수철리에서 날머리 단양군 용부원리 까지 약 6시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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