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둑 뿌려지는 찬 기운이 차창을 두드린다. 나는 팔짱을 끼고 널부러지고 차는 돌고 돌아 간다. 덜커덩...눈을 뜨니 정선터미널이다. 터미널에 내려 오른쪽, 오른쪽으로 난 도로를 오르면 마른 고추대들 서걱이는 뱅뱅이재 들머리이다. 절로 아라리 한구절이 주절주절 튀어 나온다. "고추밭 풀 뽑으라면 풀 하나 못 뽑는 조 잡년 속곳 가랑이 벌리라면 도둑놈 칼 빼듯 하는구나" 길은 한가락 읊조리게 한다. 50여분 포장된 길은 끝나고 비포장 길이 시작된다. 비포장 길을 걷다 보면 모든게 느리게 다가선다. 그 느림은 빠른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불러온다. 어설픈 걸음 만큼이나 어설픈 내 삶이 오고 그 삶들의 배경들이 늘어선 나무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시릿한 바람에 흔들려 온 삶의 배경을 쫓다보면 비포장길은 어느덧 삶의 중심을 잡아가고 감춰진 나를 불러온다 하여 비포장길은 경계심과 적대감으로 오는 도심의 길보다 우호적이고 호기심 어린 시선이 곱다. 더불어 이웃들은 투박하고 거칠지만 가슴 따뜻한 배려를 만날 수 있다. 그런 걸음은 어느덧 작은 고갯마루에 이르고 발치 아래로 강은 굽이 친다. 내려다 보이는 조양강 줄기에 기대어 선 촌가들의 모습들이 아라리 곡조처럼 정겹다. 아름다운 선으로 다가서는 나팔봉, 고즈넉한 그 너머 마을들... 눈은 발을 잡고 붙잡지만 길은 내리막, 평지처럼 걷다 내리막, 그렇게 길은 몇번이고 반복된다. 뱅뱅이재라는 이름에 걸 맞는 갈지자 길이다. 그 갈지자 길을 내려 서면 날머리 귤암리다. 강변 마을 그 옛날엔 강물이 넘쳐나면 고립무원 뱅뱅이재 넘어 정선으로 먹을 것 구하러 길 떠난 님소식이 궁금해 불렀을 아라리 한 구절 떠오른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뱃 길 건네주게 싸리골 올 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이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곡조 따라 흐르는 강을 바라다 보니 세월이 절로 흐른다. "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아라리 아라리 아라리요". 에둘러 토끼길 정선땅을 이별한다
*버스는 동서울 터미널에서 운행된다. 2011년 현재 뱅뱅이재는 도로개설과 전망대 공사로 예전과 다르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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