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인가 이 땅에 사람이 왔을 것이다. 얼기 설기 집을 짓고 살았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어느날인가 누군가 옆에 터를 잡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불편했을 것이다. 자기만의 공간이란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얼기 설기 무언가로 울타리란 것을 만들어 세웠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울타리 너머로 오가는 서로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래서 넌즈시 넘겨보는 곳은 늘 설레이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눈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눈이 발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발들 하나 둘 걸음을 만들고 걸음이 걸음 낳고 낳아 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길은 우리 곁에 생겨났을 것이다. 늘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고샅길에 흔적을 남기고, 생각이란 것을 뿌리고 스스로 만들고 걸었을 것이다. 때론 성큼성큼 때론 종종걸음치고 때론 내달렸을 것이다. 처음엔 아주 작은 길이었을 것이다. 때론 들판을 가로질러 왔을 것이고 때론 작은 언덕을 끼고 돌아 갔을 것이다. 어느 때인가는 마음 심란하여 갈짓자 걸음으로 걸었을 것이고 작은 개울에 마음을 흘려 보내면서 여리고 부드러운 길을 만들어 걸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마음이 마음을 부르고 이웃과 이웃이 화답하여 조금 큰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왕래가 더욱 잦아졌을 것이다. 더 멀리 용기를 가지고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길은 떨어져 쌓이는 낙엽으로 덮이고 흐르는 빗물에 갈라져 가고 흩날리는 눈에도 쉽게 지워지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걷는 고행길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발걸음 더욱 많아졌고 생각도 깊어져 마음이 넓어졌고 길도 덩달아 넓어졌을 것이다. 그러다 그 길모퉁이에 허기를 면하는 곳이 들어앉고 기웃거리면서 느긋하게 걷는 맛을 알았을 것이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이란 것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세월이 세월을 쌓고 쌓아 내 살아 있는 오늘 날 어느 길 어느 모퉁이에서 사랑스럽고, 안쓰럽고, 부드럽고 질긴 그대를 만나러 가는 내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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