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저녁 길을 바람과 함께 걷습니다. 주섬주섬 던저 논 이런저런 씨앗들이 어느사이엔가 마당구석에 푸른 푸성귀밭이 되었습니다. 그런 풍경을 들여다보니 저만큼 버려 두었던 희망의 낯짝이 새삼 고개를 듭니다. 애초의 그 푸르른 싱싱함으로 피어 나던 시절의 솟대같이 솟은 희망은 등등했습니다. 그 등등함 만큼이나 쿵쿵거리는 발걸음은 거칠게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 텅 비어 버린 것에 놀라 적당적당 그렇게 한번 그르쳐 든 길에서 남의 밭마저 망쳐온 것 같은 아픔이 깊습니다. 살다보면, 아니 엎어지든 체이든 가다보면 앞은 열리겠지 애써 눈을 들어 먼산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 동안 세월의 머리털은 하얗게 쇠어갔습니다. 욕망의 초록이 쭉쭉 뻗쳐오르던 억새풀 언덕에 마른 뼈들 스치는 소리만 생생합니다. 계절은 벌써 깊어져 또 한 발 늦는다 싶지만 한 발 늦는 그것이 다시 길을 걷게 한다면 먼 산도 나를 위해 아침해를 밀어 올려 줄 것입니다. 세상이 눈물나게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이 글을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