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동진강 하구
몇달만인가? 바쁘다는 핑계 하나로 사는 요즘 오랜만에 일상을 떠나 걸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것중 하찮음이란 있을 수 없지만 그러함에도 하찮음이란 핑계를 만드는 일상 살기마저 느끼는 분기에 치를 떠는 날이 많아졌다. 세상의 혼란스러운 일들만이 만든다고 말하기 어려운 일상 탈출 욕구는 나를 정처없이 걷게 만든다. 잿빛이 주는 서늘한 풍경이 그리운...서해의 포구들을 걷는다. 이렇게 여행길에 서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을 수 없는 불균형과 세상사 상대성을 읽게 되는 것이 여행이 가져다 주는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피로와 권태와 변화의 두려움이 짓이기는 일에 쌓여 인내의 저수지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식민의 일상이 요동치는 날을 뒤로하고 걷는 길 땅에서 나오는 것은 모든 것이 바다로 흘러든다는 간단한 진리 하나를 말많은 새만금 앞 바다는 경박스럽지 않게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하찮치 못해 하찮은 일상의 가벼운 건드림은 모욕이고 허탈이고 권태를 불러 왔다. 한줄기 바람이 흩어저 있던 삶의 조각들을 불러 모은다. 두통 같은 경고의 말들에 익숙한 단정한 삶들이 징징거린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규율에 익숙해 버린 날들... 그렇다고 내가 그런 규율을 집어 내 던지고 살지도 못할 것이란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안간힘을 쓰는 만큼 정리 되지 않는 것들은 자꾸만 탈출을 부추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물질의 관계에서 나는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 옛그림에는 그림자가 없다, 구름도 없다. 그것은 항상 그 모습대로 보여지는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랬다, 저랬다 함은 참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림자를 볼 수 없는 곳에 서서 나를 본다. 강물 위를 흐르는 공기 같은 삶이 투명하다. 하지만 서늘한 삶의 교통로가 된 강물은 세상 만큼이나 불투명하다. 너무나도 지나치게 습관적인 생각에 묻혀 살아서일까? 나는 종종 강 밖의 삶을 잊고 살았었다. 깊고, 얕고, 갈라진 곳을 가리지 않고 걸어야 하는 삶들을... 이럴 땐 침묵만이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 침묵은 강의 다양한 깊이 만큼이나 다양한 사유를 하게 한다. 침묵의 강은 나를 전율케 하는 음악이 되어 흐른다. 말로 할 수 없는 말들이 흐른다. 어느덧 강은 밤빛을 탄다. 침묵의 강에 묻는다. 나는 요즘 왜 시계추가 되어 살고 있는가?
*이 동진강길은 흐린 날이 제격이다. 하여 만나는 서해의 포구에 서면 너와 나,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 동진강 하구는 23번 국도를 따라가다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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