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그늘을 사랑합니다

지난 시절 내가 꿈꾸던 세상은 누구의 누구였습니다. 그 누구의 누구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살며 등과 가슴에 그럴싸한 이름표 하나 붙이고 살았습니다. 그런 시절이 쫓기듯 달아나는 이 가을 나를 애써 품어 낳은 당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나간 시절 나는 당신을 꿈꾸듯이 그리며 기억해 왔습니다. 나는 당신의 삶을 화려한 수식으로 포장하여 늘 한줄기 빛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나는 낮은 어깨들이 키를 맞추며 사는 저녁 어스름에 덮여오는 당신을 생각하질 못했습니다. 눈만 뜨면 만나는 꽃 같이 아름다운 인생만이 푸르름으로 너울너울 치장한 인생만이 내가 걷는 세상에서 꿈꾸는 당신이라 여겨 왔습니다. 현실 속 당신이 만드는 그늘을 나는 외면했습니다 . 아니 교묘하게 포장하여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 잎을 틔우고 줄기를 이루고 꽃을 피워 숲을 만들어 가던 어느 때 부터인가 꿈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전에 나는 현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을 쉽게 인정할 줄 알아야 세상 꿈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럴듯한 누구의 누구가 아니어도 세상은 스스로 값지다는 것을 내가 깨닫는데는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내가 이렇게나마 깨닫고 사는 것은 당신의 그늘 속 삶이 나에게는 커다란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허허롭게 떠난 당신의 삶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닫던 그날 나는 참으로 많은 눈물을 당신께 뿌렸습니다. 세상이라는 숲 가장자리 그늘에서 만난 삭정가지처럼 뚝 뚝 부러지는 이웃들의 삶에서 나는 누구의 누구라는 것이 진정한 삶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누구의 누구처럼 빛나는 화려함 보다 어둡고 질기며 강한 그늘 속 당신의 삶을 사랑합니다. 
나는 오늘 진정한 이름표 하나를 가슴에 달고 당신이 주신 사랑의 길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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